화해의 직분(5:11-15)
바울은 이 단락에서부터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하나님과 화해할 것과 사도에게 그들의 마음을 열 것을 호소한다. 바울은 먼저 11-15절에서 자신의 설교와 삶의 동기를 밝히고 있다. 첫째는 11절에서 하나님의 심판과 관련하여, 그리고 14-15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과 관련하여 자신의 사역의 동기를 언급한다.
11절의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라는 표현은 10절의 심판에 관한 말과 연관되어있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기본자세를 의미한다.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어졌으니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어지기를 바라노라”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동기와 행동은 하나님 앞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알린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그들의 양심의 소리를 듣는다면 자신에게 아무런 속임이 없음을 알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는다.
12절의 “우리가 다시 너희에게 자천하는 것이 아니요”는 바울이 추천서에 대해서 민감하다는 것을 암시한다(3:1). 바울은 대적자의 비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것이다. 바울의 경쟁자들은 자기들의 외적 특징을 내세웠던 것 같다. 이들은 아마도 성령에 대한 강조와 기적행위, 유창한 구변 등을 자랑으로 내세웠던 것 같다(12:1; 11:6, 13-15; 10:9-11).
그러나 바울은 그런 것을 육신의 행위라고 비난했다. 13절의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 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는 바울 사도와 거짓 사도의 차이는 구별하기 어려운 것임을 강조한다. 이것은 바울이 대적자들의 비난에 대해서 대응하는 것일 수 있다.
다른 한편 바울의 메시지가 청중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가르침 때문에 미쳤다고 비난받은 것을 의미할 수 있다(참조. 요 10:20; 행 26:22-24). 물론 바울은 그 비난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것은 바울의 영적 경험에 대한 비난을 생각해서 한 말일 수도 있다. 대적자들은 바울이 영적 경험이 부족하다고 비난했던 것으로 보인다.
14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언급하면서 자신이 전적으로 헌신할 유일한 목표가 그리스도의 사랑이라고 밝힌다. 바울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역을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으로 정리한다(참조. 갈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5절은 14절의 연장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음을 강조한다. 바울은 15절에서 그리스도의 죽음으로부터 유익을 얻는 이들의 삶에 관하여 그리스도의 죽음의 목적을 묘사한다. 첫 부분은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라고 소극적으로 진술한다.
하지만 뒷부분은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라고 적극적으로 말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동기와 목표가 무엇인지 확인시켜주는 부분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화해 행위(5:16-21)
이 단락은 앞부분과 계속되는 단락이다. 내용적으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임하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효과를 말하면서 15절에 기록된 대리적 죽음을 더 깊이 있게 설명한다. 18-20절에서 하나님의 화해의 행위와 화해의 직분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14-15절에 선포된 예수의 대리적 대속의 죽으심이 가져온 사랑 물결이다. 본 단락은 앞에서 언급한 사도의 삶을 현실적으로 움직이는 힘의 배경과 근본 원인을 설명하는 역할을 한다. 이것은 곧 하나님의 화해의 사건이다.
16절의 ‘그러므로’는 15절과 연결된다. 바울이 그리스도의 죽음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을 때 그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은 평생토록 삶의 동기와 힘이 되었다. 바울이 말한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는 그가 역사적 예수에 관심이 없고 믿음의 주님에게만 관심을 집중하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증거본문으로 자주 사용된다. 하지만 바울은 그리스도의 실존의 어떤 단계에 대한 것이 아니라 앎의 방식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이전에 자신이 그리스도에 대하여 인간적인 불완전한 지식을 가졌다는 것이며, 이제는 그리스도에 대한 앎이 그런 방식으로 제한 받지 않는다는 말이다. 17절의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에서 바울은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생각이나 인간과 세계에 대한 관계에서 새롭게 시작한 존재 양태를 설명한다. 이것은 역사적 종말론적인 변화이며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그리스도인됨의 의미를 가장 잘 표현한 말이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단순히 입술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예배와 기도회에 참여하고 몸으로 봉사하며 헌금을 드리는 정도가 아니라, 사고 자체가 근본적으로 바뀌어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삶의 동기와 목표가 완전히 새로워진 사람을 의미한다.
18-21절에서 바울은 예수의 대리적 속죄의 죽음을 하나님의 화해의 사건으로 이해하고 자세히 설명한다. 바울은 18절에서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라고 강조한다.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을 화해의 직분으로 이해한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를 이미 그 분과 화해시키셨다.
19절의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는 18절에서 설명한 내용을 좀 더 확장해서 설명한다. 화해의 사역은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셨는가에 대한 선포이다.
20절의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는 이 단락의 결론이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화해의 메시지를 전한다.
21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인의 죄가 용서되고 하나님과 평화를 누린다는 것을 구약성경의 속죄 제도를 생각하면서 결론을 내린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하여 압축된 내용을 진술한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이라고 소개한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속죄 제물이 되셨다고 진술한다. 바울이 “하나님의 의”를 말하고 있는 데 이것은 동일한 주제를 다룬 다른 부분들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참조. 롬 3:21-26; 빌 3:7-9). 하나님의 의는 신자들을 대신한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그들을 정죄하지 않으신다는 선고를 하셨다는 것이다. 이제 바울은 이 화해의 사역과 함께 6:1-13에서 고린도 교회 교인들을 향한 간청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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